한국불교의 역사 ---- 신라 불국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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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창의성을 발휘하여 적극적이고 독특한 신앙사상을 활발히 전개시켰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국이라는 즉, 신라불국토사상(新羅佛國土思想)이다. 이는 전불유연(前佛有綠), 신라진불국(新羅眞佛國), 현실불국정토관(現實佛國淨土觀) 등이 아우러진 것이다. 이러한 신라불국토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삼국유사]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신라가 과거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전불유연의 국토임을 알 수 있음은, 신라땅에 석가모니불 이전 가섭불 때의 절터가 있고 또 그 부처님이 직접 앉아 설법하신 돌자리(迦葉佛宴坐石)가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어머니 고도령으로부터 신라로 전법할 것을 권해받은 말 속에 전겁 전불시의 가람터가 신라 경도(경주)내에 일곱 군데나 있었다는 철처가람이 보인다. 즉, ① 천경림 금교(흥륜사) ② 삼천기(영홍사) ③ 월성동 용궁남(황복사) ④ 용궁북(분황사) ⑤ 사천미(영묘사) ⑥ 신유림(사천왕사) ⑦ 서청전(담엄사 터) 등이다. 신라불교인들의 신앙과 사상을 설화형식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칠처가람터 가운데 황룡사에 가섭불이 앉아서 설법하셨던 자릿돌이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불전 뒷쪽에 있던 연좌석을 직접 보았는데 나중에 몽고명란으로 황룡사가 타 버렸을 때에 그 연좌석도 땅에 묻히고 말았다 한다. 또 자장(慈藏)법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진신(文殊眞身)을 만났을 때에 신라의 황룡사는 석가불과 가섭불이 강연하던 곳이라 연좌석이 아직 남아있다고 함을 들었다 한다. 그밖에 또 왕성 경주 외에 신승(神僧) 낭지(朗智)가 오래 살고 있었던 영측산의 혁림암 자리도 가섭불 때의 절터임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신라가 비록 법흥왕대에 와서 불교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석가여래 출세 이전에 이미 이 땅에는 불법과 인연이 깊었다는 것으로 믿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장소와 물증을 통하여 사실화시켜서 진지하게 신앙하였던 것임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신라가 전불유연국토라고 보았던 신라인들은 나아가 신라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부처님의 나라인 진불국토(眞佛國土)임을 자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신라 본위적 불국관의 근거가 되는 것이 황룡사 장육불상의 조성에 얽힌 연기설화이다. 즉, 진흥왕이 황룡사를 창건한 뒤 오래지 앉아 남해에 한 거선이 닿았다. 그 배 안에는 금, 철과 1불 2보살상의 모형과, 서축 아육왕이 석가삼존상을 주성하려다 이루지 못한지라 인연있는 국토에 가서 장육불의 존용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축원이 함께 있었다. 왕은 동축사를 세워 모형 삼존상을 안치하게 하고 그 금철은 경도로 옮겨서 진흥왕 35년에 장육존상을 이루어 황룡사에 모셨다는 것이다. 인도 아육왕이 불멸 후에 나서 부처님의 진신에 공양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세 번이나 불상을 주성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여, 그 금철을 큰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는데 해변을 따라 가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나 아무 곳에서도 불상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드디어 신라국에 이르게 되어 진흥왕이 주성함으로써 상이 완성되었는데 상호가 원만히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이 설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신라만이 참으로 부처님과 인연이 깊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지인 천측보다 신라가 더 훌륭한 부처님의 나라인 진불국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 배가 도착하있던 곳에 동축사(東竺寺)를 세움도, 부처님의 생연국(生綠國)인 인도는 서천축이며 진불유연의 신라는 동천축이라는 뜻을 함축한 것이다. 또한 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정법왕인 아쇼카 왕조차 이루지 못한 뜻을 신라의 진흥왕이 신라에다 훌륭하게 이루어 놓았다는 사실도 진흥왕과 아쇼카 왕의 인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신라의 불교가 탈생국 인도의 불교보다도 더욱 훌륭하다는 것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장육존상의 조성설화 역시 하나의 설화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사실화시켜서 신라의 신앙이 되어, 신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게 불법을 펼치고 불국토를 이룩한 진불국임을 확신케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신라는 전불(前佛)시부터의 유연국(有綠國)이며, 가장 수승한 불연국(佛緣國)으로서 진불국이라고 자부하였던 신라인들은 더 나아가서 신라 이대로가 바로 불국정토라는 현실정토사상을 이룩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신라에는 불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곳이 있으며 많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이 땅에 항상 머무시면서 그 몸을 나누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원도 양양 낙산은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머무시는 진신상주치로서 의상대사 (625一702)가 그 바닷가의 암굴 안으로 들어가 관음의 진용을 직접 만났으며, 그 가르침에 따라 낙산사를 세우게 되었다. 그 뒤 원효성사(617-686)도 낙산의 남교에서 여인으로 화현한 관음을 만났고, 그 낙산에는 정취보살의 진신도 상주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인데 자장법사가 그 곳에 문수진신을 친견하고자 갔으며, 나중 신라통일 이후에 정신대왕의 태자 보천과 효명 형제가 그곳으로 들어가서 수행할 때에 동.서.남.북 중의 오대(五臺)에 각각 일만의 관음, 세지, 지장, 나한, 문수 등 모두 오만진신이 몸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또 효소왕이 망덕사의 낙성회를 설할 때 석가불진신에 공양하였다 하며, 또 지통(智通)은 어려서 영취산으로 출가하여 보현 대사에게 직접 오계를 받았다. 그리고 원성왕대의 고승 연회는 이 영축산의 서쪽 고개에서 문수 노인과 변재 천녀를 만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신라는 불보살이 상주하면서 그 진신을 나투는 진신 상주의 국토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축의 석가불이 이 땅에 그 진신을 나툴 뿐만 아니라 상주처까지도 이 땅에 있으며, 그 진신이 항상 설법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신라를 불보살의 상주설법도량이라고 믿었던 신라인들은 드디어 신라 그대로가 바로 정토라는 사상을 보여주기에까지 이르렀다. [삼국유사]의 사복불언조에 나타난 것처럼, 신라인들은 연화 등장 불국정토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타국의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서 신라 땅이 바로 불국정토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마침내는 신라불의 현신성도(現身成道) 신앙을 결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전세의 과거불이 연좌하였고 현세의 석가불과 제불 제보살이 상주현현하는 부처님 나라 신라에, 이 땅의 부처님이 새로이 출현 성불한다는 것은 당연한 신앙의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백월이성 (노힐부득.달달박박)의 미륵불과 미타불 현신성불이라든지, 광덕·엄장의 왕생서방극락, 욱면비의 염불서승, 포산이성의 현신귀진, 포천산 오비구의 염불서왕 등 신라인들은 불국토에 사는 상근기로서 많은 사람이 성도하고 현신서왕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신라의 불국토사상은 전불시의 유연관으로부터 현재의 유연수승의 불국토관으로, 그리고 다시 현실불국정토사상으로 정연하게 전개되어 왔다. 신라가 바로 불국정토라는 현실적인 불국관은 끝내 신라의 현신불을 출현시키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법화경] [화엄경] [미륵하생경] [관음경] 등 경전의 사상적 뒷받침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라가 부처님 나라이므로, 신라인이 부처님 나라인 신라를 지켜야 한다는 호국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호국불교의 양상은 신라뿐 아니라 신라이래 한국불교의 특색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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