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역사 ----근대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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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불교 여기서 말하는 근대는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바꾼 1897년에서 8.15해방까지로 한다.
조선조 500년간 억압을 받았던 불교계는 근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또 위축되었다.
개항이 이루어진 다음 해인 1877년부터 일본의 침략과 더불어 일본 각 종파의 승려들은 국내 곳곳에 포교당과 사찰을 건립하고 국내의 승려들을 포섭 또는 개종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먼저 호의를 베풀어 환심을 사기 위해 파격적인 방법으로 조선시대 불교탄압의 상징이었던 승려들의 도성출입금지를 해제하였다.
1895년 4월에 일본당국과 승려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 조치는 국내의 승려들뿐만 아니라 일부 지식인들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지금까지의 불교배척을 완화하기에 이르렀고, 불교계에서도 전국 사찰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취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정부는 1899년 동대문 밖에 원흥사를 세워 조선불교의 총종무소로 하고 전국 13도에 각각 하나의 중심 사찰을 두어 업무를 총괄하였다.
1902년에는 정부가 사찰을 관리하기 위해 궁내부 소속으로 관리서를 설치하였다. 관리서에는 사사관리세칙을 제정하고, 대법산, 중법산 제도를 실시하여 전국 사찰을 총괄하였다. 대법산은 국내 중심 사찰을 원흥사로 정하고, 중법산은 도내 중심 사찰로서 16개의 사찰을 지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사찰 및 승려는 국가 행정의 범위 안에 있게 되었다. 관리서는 궁내부 소속의 관서였기 때문에 공무원이 사무직에 임명되어 여러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혼란과 공무원의 부패로 인하여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04년에 관리서와 대법산 제도는 폐지되었다.
1906년에 이보담, 홍월초 등이 일본 정토종의 영향을 받아 원흥사에 불교연구회를 창설하고, 명진학교를 설립하였다. 1908에는 전국 승려대표 52명이 원흥사에서 모임을 갖고 정토교 일색이었던 불교연구회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종단을 세울 것을 결의하고 종단의 이름을 원종(圓宗)으로 결정하고 원흥사에 종무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으로 가서 일본 조동종과 원종을 합병하기로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격분한 국내 승려들은 1911년 조계산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고 임제종을 세웠다. 임제종은 임시 종무원을 송광사에 두었다가 금정산 범어사로 옮겨 서울의 원종과 대치하면서 태고 보우 이래의 임제종 법맥을 견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911년 6월에 조선총독부에서 사찰령을 제정, 반포함으로써 원종과 임제종은 없어지고 말았다.
불교교단 또한 사찰령 시행세칙에 의거하여 30본산으로 형성되어 종단의 이름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30본산, 곧 30개의 교구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결여되어 포교 및 교육사업의 일원화를 꾀하기 위해 1915년에 서울의 각황사에 30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 연합사무소는 30본산간의 사무만 집행했을 뿐, 전국 사찰과 승려를 통제할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통제를 위해 조선불교 선교양종 중앙총무원을 설립하였다. 중앙총무원은 1922년 각황사에 설치되었는데 그 해 5월에는 중앙총무원의 설치에 반대하는 본사 주지들의 합의에 의해 조선불교 선교양종 교무원이 역시 각황사에 설치됨에 따라 총무원과 교무원은 서로 대립하다가 1925년 하나로 합쳐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구성하였다.
1929년 1월에는 각황사에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종헌과 교무원의 원칙 및 교정회법, 종회법 등을 제정하고, 7명의 교정(敎正)을 선출하여 종단 최고의 원로기관으로 하였다. 선교양종이라는 종단 이름하에 합법적이고 통일적인 중앙통제기관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종단 이름과 종의 취지가 불분명하였다. 그리하여 1941년 봄 종단 이름을 조계종으로 결정하고 태고사를 세워 총본사로 하였다.
1941년 4월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사태고사법이 인가를 받고 제1대 종정에 한암 중원을 추대하고 그 해 6월 총본사에서 종무를 시작하였다. 종정에 추대된 중원은 종정취임을 승락하여 8월 총독부로부터 종정 취임인가를 받았다. 9월 종무 고문 6명과 종무총장의 명단을 발표하고, 종무원에는 서무부, 교무부, 재무부의 부서를 두었다. 그리고 종회법, 승규법 등을 제정, 발표하였다.
조선불교조계종은 1945년 8월 해방을 맞이하여 한국불교조계종으로 재정비되기에 이르렀다. 그 해 10월에 전국승려대회를 열고 총독부의 사찰령과 조계종총본사태고사법 등을 폐지하는 한편, 새로운 교헌을 제정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초대교정에 박한영을 추대하고, 중앙총무원장에 김법린을 선출하여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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