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역사 ----고려불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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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교는 일반적으로 호국적이고 귀족적이었으며 기복적(祈福的)이었다. 고려시대의 왕실과 귀족은 물론, 일반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불교는 국교로 신봉되었는데 특히 국가를 비보(裨補)하고 국운을 번영하게 하는 호국적인 종교로 인식되었던 이 시대의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 더욱 융성했다. 불교에 대한 국가적인 보호와 숭상에 따라 왕자 및 귀족 자제들이 출가하는 풍속이 생겨났다. 승려들은 국가의 모든 역으로부터 면제되고 사원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았다. 이처럼 승려들은 귀족 계층에 속했고 국가 권력과 밀착한 불교는 귀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나 왕실의 안녕과 융성을 기원하는 호국적이고, 기복적인 많은 불교 행사가 성행했다. 법회(法會), 도량(道場), 설재(設齋) 등으로 분류되는 행사의 종류는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 인왕(仁王)도량, 무차대회(無遮大會), 반승(飯僧), 경행(經行) 등 무려 70여 종이나 되었다. 고려 초기의 불교계는 대체로신라 말기부터 성장하고 있던 선종이 화엄종과 대립하면서 계속 발전했다. 선승(禪僧)들에 의해 화엄종에 대한 공격이 전개되었고 화엄종 승려 중 상당수가 선종으로 개종함으로써 화엄종은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종대의 균여(均如)에 의해 화엄종 내의 남·북악(南北岳)의 대립이 극복되면서 화엄학은 새로운 단계로 전개되었다.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고 문벌귀족 세력이 대두하자 호족세력과 밀착되어 있던 선종은 밀려나고, 그 대신 문벌귀족의 불교로서 화엄종과 법상종(法相宗)이 고려 중기 불교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흥왕사(興王寺)를 본거로 하는 화엄종은 의천(義天)에 의해 주도되었고, 현화사(玄化寺)를 중심으로 하는 법상종은 해린(海麟), 소현(韶顯) 등에 의해 발전하고 있었다. 화엄종의 의천은 국청사(國淸寺)에서 천태종(天台宗)을 성립시키고 선교(禪敎)의 일치를 주장했다. 무신난 이후의 고려불교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신앙단체로서의 결사(結社)의 유행은 주목할 만하다. 귀족붙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이 결사운동은 기층 사회의 신앙으로 확산되었는데, 선종의 수선사(修禪社)와 천태종의 백련사(白蓮社)가 대표적이다. 지눌 (知訥)이 개창한 수선사는 곧 조계종(曹溪宗)의 확립이기도 했다. 지눌이 주장한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사상은 혜심(慧諶)등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계승·발전되었다. 이 밖에도 선종에는 지겸(志誅), 일연(一然) 등과 여말의 보우(普愚), 혜근(惠勤) 등의 고승이 배출되어 선풍(禪風)을 떨쳤다. 고려불교가 남긴 최고의 문화 유산은 고려대장경이다. 그리고 불교가 고려 예술에 끼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불교 신앙으로 함양된 고려인의 맑고 깨끗한 마음은 고려청자의 정신적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사경(寫經)이 유행하여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금·은자 사경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의 불화 또한 일본에 많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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