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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 - 1. 부처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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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처님 생애 불교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석가모니라는 명칭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라는 의미이며,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래 부처님의 성은 고타마이며 이름은 싯달타였는데 진리를 깨달은 이후부터 부처님(Buddha)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소리를 따서 ‘불타(佛陀)’로 적거나 혹은 뜻을 옮겨서 ‘각자(覺者)’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부처님은 여러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데 전통적으로는 여래십호(如來十號)라 하여 10가지의 이름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B.C. 624에 탄생하셔서 544년에 열반하셨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불기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부처님은 석가족이 세운 카필라 왕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 왕비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카필라 왕국은 지금의 인도 북부 네팔 땅에 위치한 작은 왕국으로 벼농사를 주된 산업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마야왕비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출산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싯달타를 출산하게 되었다. 마야 왕비는 아기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싯달타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다. 비록 일찍 어머니를 잃은 싯달타였지만 왕자로서 모자람 없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태자 싯달타는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의 근본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왕인 정반왕은 태자 싯달타의 번민을 알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삼시전(三時殿)이란 세 개의 궁전을 지어 철마다 옮겨 다니면서 호화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하였다. 그러나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도 싯달타 태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사람은 왜 늙어야 하며, 또 병들고 아파야 하며, 결국은 죽어야 하는 것인가? 또한 현실은 너무나도 괴로움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러한 괴로움은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가르침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가르침만이 옳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가르침이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사색과 번민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19세에는 같은 석가족의 콜리성주의 아쇼다라 공주와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가 태어납니다만, 싯달타 태자의 머리에는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를 벗어나 해탈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로 늘 가득 찼다. 드디어 싯달타 태자는 출가를 결행하니 그의 나이 29세였을 때입니다. 출가를 한 싯달타는 스승을 찾아 나섰다. 당시 가장 훌륭하다고 소문난 두 명의 수행자로부터 선정(禪定)에 이르는 가르침을 얻었다. 즉 정신통일을 하여 고요한 경지에 도달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정(禪定)도 깨어나면 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괴로움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신통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정신작용의 완전한 정지는 죽음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싯달타는 두 스승을 떠난다. 전통적인 수행자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안 싯달타는 혼자의 힘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가야의 네란자라 강가 숲 속에 자리잡고 정신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고행을 극심하게 하였다. 이러한 극단적인 육체적 고행으로 싯달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을 뿐 깨달음은 얻지 못하였다. 드디어 그는 네란자라 강에서 몸을 씻고 고행을 그만두었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로부터 우유로 발효시킨 죽을 받아 마시고 기운을 되찾게 되었다. 건강해진 몸과 상쾌한 정신으로 싯달타는 보리수 그늘 아래에 앉아 참선수행에 몰입하였다. 며칠이 지난 새벽에 그는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었다. 왕궁을 떠나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걸은 지 6년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35세 때였다. 깨달은 사람 즉 부처님이 된 것이다. 그의 깨달음의 주요 내용은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은 신이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스스로가 지은 원인에 의해서 받는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부처님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떠나 처음으로 향한 곳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이었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최초로 다섯 수행자들에게 수행의 바른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수행자는 지나친 향락에 빠져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극단적인 고행을 하는 것도 옳지 않으므로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가라”고 가르쳤다. 이어서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가르쳐 다섯 수행자들을 깨우치게 했다. 그들은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된 것이다. 이후 왕사성(王舍城)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나가 수많은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국왕과 대신, 부호, 평민, 천민 할 것 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큰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평등한 것이다. 온 생애를 오로지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데에 바치신 부처님께서도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이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라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황혼처럼 부처님은 80세의 위대한 생애를 마치셨다. 35세에 깨달음 얻은 후,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을 시작으로 하여, 쿠시나가라에서 80세에 열반에 들기까지 부처님은 45년 간 쉬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길에서 태어나시어, 길에서 고뇌를 하시고, 길에서 수행하며, 길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길에서 사람의 갈 길을 가르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길에서 주무시며, 길에서 돌아가셨고 글자 그대로 부처님은 바로 길에서 길을 인도하신 도사(導師)였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도(求道)와 성도(成道) 그리고 교화(敎化)와 입멸(入滅)의 길을 걸으신 부처님의 생애는 참으로 위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부처님은 정신적인 깊이와 도덕적 위대성을 지니시고,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분으로서 인류에게 인간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부처님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 크게 외치셨다. 이것은 당시 신 중심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 중심의 세계관이 불교의 핵심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또한 부처님 법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불법의 절대적 존엄성을 상징하고 있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해 이후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진정한 자아 회복에 관한 것이다. 신의 아들도 아니고,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한 일도 없으며, 어떠한 신적(神的)인 권위나 강제된 교리도 설한 일이 없는 한 인간의 삶과 사상에서 불교와 같이 장대하고 깊이 있는 가르침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한 인간으로서 부처님 개인의 삶에서 성취된 해탈의 가르침과 숭고한 인류애는 바로 불교의 변치 않는 척도를 나타내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했던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불교의 사상과 실천을 통해서 한층 성숙한 안목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수많은 구원과 신앙의 보살상을 완성해 냈다. 관세음보살도, 보현보살도, 지장보살도, 문수보살도, 대세지보살도, 인로왕보살도 모두 불교의 영원한 인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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